작성일 : 18-03-07 10:18
사법계 '축적의 시간'은 있나
 글쓴이 : 고영회
조회 : 1,361  
- '변리사만 할 수 있다' 법 불구 법원 '변호사도 할 수 있다'로 변호사 업무영역 자의 판단 빈번

- 우리나라 사법 신뢰도 밑바닥
창조적 축적·경험 필요한 시대
사법계 이기적 현실 되돌아볼 때

2년 전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 26명이 한국 산업계 현실을 진단한 책 '축적의 시간'이 나왔다. 그들은 우리 산업이 외국의 기술을 들여와 제품을 만들어 팔아 경제를 키웠지만, 지금 우리 산업은 한계에 부딪혔다고 진단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개념설계역량(풀어야 할 과제가 있을 때, 문제의 속성을 새롭게 정의하고 창의적으로 해법을 찾아내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이 역량은 경험을 축적해야 쌓을 수 있다. 지금이라도 키워 나가야 한다. 창조적 축적을 지향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 창조적 축적은 산업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서 이뤄져야 하고, 사법계도 그래야 한다. 사법은 정의로움이다. 변호사법에는 '인권을 지키고 사회 정의를 실현함'이 변호사의 사명으로 돼 있다. 우리 사법 분야는 정의로운 경험을 쌓아 가고 있을까? 변리사제도 관련 일에서 따져 보자.

변리사에게는 특허 사건에서 소송대리권이 있다(변리사법 2조와 8조). 법에 명문으로 규정돼 있음에도 법원이 특허침해소송대리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변리사들은 2010년 헌법소원심판을 제기했다. 사회적 논란이 큰 사건이었기에 공개변론도 한 사건이었다. 결론은, 헌법재판관 8명 전원이 소송대리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론에 이른 논리도 엉성하다. 가재는 게 편이라고 의심할 만했다.

최근 또 사건이 생겼다. 특허 일은 변리사만 대리할 수 있다(변리사법 2조와 21조). 변리사가 아닌 사람이 대리인으로 나서면 형사 처벌을 받는다. 변호사에게는 변리사 자격이 자동으로 주어진다. 작년부터 연수를 받아야 하는 조건이 생겼지만 여전히 자동자격이다. 변리사 자동 자격자가 상표를 출원하면서 굳이 '변호사'라고 하면서 대리인으로 나섰다.

이때 사용한 법무법인 이름과 상표를 보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특허청은 당연히 대리인을 보정할 것을 요구했고, 보정하지 않은 서류를 무효처리했다. 그들은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를 심리한 서울행정법원은 변호사의 손을 들어 주었다. 변리사가 대리해야 하는 사건에서 변호사가 대리해도 된다고 판결했다. 팔은 안으로 굽는가.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법에 변리사에게 '소송대리권이 있다'는 조문은 법원의 해석을 거치면 '소송대리권이 없다'로, 법에 '변리사만 할 수 있다'는 조문은 법원의 해석을 거치면 '변호사도 할 수 있다'로 바뀐다.

변호사 업무 영역과 관련 있는 분야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 세무사와 기술사 문제도 그렇다. 변호사 영역과 관련된 제도는 바로잡기 힘들다. 법무부, 법제처, 국회 상임위와 법사위, 법원, 헌법재판소가 촘촘히 그물망을 치고 있다. 변호사 세상이다.

자기의 이익과 사회 이익이 부딪칠 때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일반인은 자기 이익을 택해도 어쩔 수 없다. 법으로 정한 사회 정의인데도 개인 이익을 앞세우면 곤란하다. 법원은 자기 쪽 이익을 포기하더라도 사회 정의를 선택해야 한다.

재량이란 이름으로 편향된 판결을 낸다면 범죄에 가깝다. 재량을 발휘할 수 있지만 그 재량은 허용된 경계 안에 있어야 한다. '내가 하면 관행, 남이 하면 불법'(내관남불)이 설치면 안 된다. 우리 법원은 부적절한 경험을 축적하고 있는 게 아닌가?

몇 년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에 세계 42개 나라의 사법 신뢰도를 조사한 것이 있다. 우리나라 사법 신뢰도는 42개 나라에서 39위였다. 세계 순위를 따진다면 우리나라의 웬만한 분야는 10위권에 있다. 국민총생산액(GDP)이 12위이니 10위권에 넘나들어야 기본은 하는 것이다.그런데 사법 분야는 거의 꼴찌라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나라 사법 현실을 반영한 것일 게다.

위 변리사 사례는 우리 사법 현실의 한 단면이다. 우리 사법계는 사사로운 이해관계를 떠나 법과 사실에 기초하여 공정하게 판단하는 경험을 쌓고 있는가? 사법 분야에서 '개념설계역량'을 키워 가고 있는가?

사법정의는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큰 기둥 가운데 하나다. 사사로운 이익을 떠나 사회 정의를 찾아야 하는 곳이다. 하나하나 그런 경험을 쌓아야 한다. 축적해야 한다. 오늘도 대법원 앞에서 뙤약볕을 받으며 억울함을 적은 깃발을 든 사람들을 본다. 아리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82&aid=000074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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