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3-07 10:25
집은 지난 세월을 알더라도
 글쓴이 : 고영회
조회 : 1,499  
건축물을 둘러싼 분쟁을 자주 봅니다. 소송은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지만,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어서 진실을 밝힐 증거가 없을 때에는 사실이 묻힐 수 있습니다. 억울한 일이 생깁니다.

어느 날 날벼락 같은 서류를 받습니다. 내 집이 다른 사람의 땅에 서 있으니 침해한 부분을 철거해 달라는 요구를 담고 있습니다. 집을 짓고 산 지 30여 년이 됐고, 여태 내가 남의 땅을 침범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상대방은 지금까지 토지 경계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상대방이 제시한 토지 경계 측량도에는 내 집 일부가 상대방 토지에 걸쳐 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하더라도 내 집이 남의 땅 위에 있어서는 곤란합니다. 30년 동안 아무 문제없이 살아왔는데 지금 와서 집을 헐라는 요구에 따라야 할까요?

민법 제245조 ①항에는 “20년 동안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부동산을 점유하는 자는 등기함으로써 그 소유권을 취득한다.”라고 규정돼 있습니다. 내 땅이라 생각하고 그 땅에 내 집을 짓고 20년 이상 살아왔으면 내 땅으로 할 수 있겠습니다. 문제는 20년 이상 점유했다는 것을 어떻게 밝힐 것인가입니다.

30년 전부터 집이 있었더라도 집을 그때 있었다는 흔적(증거)이 남아있기 어렵습니다. 내 집을 잘 아는 주변 사람이 증언해 주면 좋겠지만, 까마득한 옛날을 기억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상대방이 증언하는 사람(증인)의 진실성을 의심하면 재판부도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사건에 휘말리면 ‘집을 지은 지 30년이 흘렀으니 건축 재료를 조사하면 건축 시기를 밝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건축재료는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가지 변화한 흔적을 남깁니다. 건축재료로 많이 쓰는 시멘트는 짙은 색에서 점차 낡은 색으로 바뀌고, 외부에 노출된 표면에는 빗물이 흘러 검은색으로 바뀌고, 시멘트 블록 담장을 담쟁이가 타고, 두겁석(담장 맨위에 얹는 가로재)에는 풀이 자라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표면 변화에서 건축 시기를 찾아내기는 어렵습니다. 시멘트를 사용한 콘크리트 제품은 이산화탄소에 노출되면 중성화 현상(콘크리트가 표면에서 속으로 점차 알칼리성을 잃어가는 현상)이 생깁니다. 중성화 깊이를 측정하여 흐른 기간을 찾는 실험식이 제시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입력하는 수치를 명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이 많아서 시료에서 ‘건축한 뒤 몇 년’이 흘렀는지 답을 찾아내기 어렵습니다.

건축 시기를 알아내려면, 건축 지식을 모두 동원해야 합니다. 건축물은 닭이 알을 낳는 것처럼 갑자기 완성된 형태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집을 지으려면 땅을 골라야 하고, 이때 축대를 쌓고, 낮은 곳은 메웁니다. 같이 세운 축대는 대개 같은 재료를 씁니다. 집은 기초를 앉히고 콘크리트나 철골재를 써서 짓습니다. 외벽과 지붕, 내장 재료는 건축 당시 생산된 재료를 쓰기에 건축 시기를 밝힐 자료입니다. 집을 지은 뒤에는 찾아온 사람이랑 찍은 사진도 참고할 자료입니다. 살면서 필요한 곳을 개조하기도 합니다. 개조할 때 쓴 재료는 처음 지을 때 쓴 재료와 다릅니다. 건축물에는 세월의 흐름이 기록돼 있습니다. 국립지리원이나 지방자치 단체는 일정 주기로 항공사진을 찍어 활용하고 보관합니다. 항공사진에서 예측하지 못한 단서를 찾을 때도 있습니다.

건축 시기는 재료, 재료의 변화, 건축하는 공법과 공법이 건축물에 남긴 흔적, 건축물대장에 기록된 것, 비슷한 시기에 지은 집과 대비자료 등 관련된 자료를 종합하여 판단합니다. 이런 분쟁에서는 건설분야 기술사가 감정인으로 참여합니다.

건축 시기를 판단할 때, 모은 자료가 모자라 건축 시기를 제대로 밝히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집을 지은 기록을 잘 남기지 않습니다. 건축업체도 기술자도 건축주도 건축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나 봅니다. 작은 생필품을 사더라도 생산자, 원료, 출고일, 사용법 등 여러 정보가 기록돼 있습니다. 그런데 수억 원을 들인 집에는 사용법 정보를 담은 서류가 없습니다. 이런 기록과 정보는, 혹시 분쟁이 생기면 분쟁을 풀 수 있는 자료입니다. 소비자 운동을 벌여야 할 것 같습니다.

건물은 지나온 세월을 알고 있습니다. 분쟁은 생기지 않는 게 좋습니다. 분쟁이 생기면 건물이 가진 정보를 찾아야 합니다. 건축할 때부터 건물에 일어난 일을 기록으로 남깁시다. 이렇게 남긴 자료가 진실을 밝히는 데 크게 기여할지 모릅니다.

http://www.freecolum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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