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5-02 12:05
기술 분쟁, 기술자가 해결사로 나서자
 글쓴이 : 고영회
조회 : 2,118  
자기 집을 지어본 사람, 건설회사 현장에서 근무하는 기술자, 공사 감리자 등 건설에 종사하는 사람이면 거의 건설 분쟁을 겪었을 것이다. 건설은 구상, 설계, 공사 계약, 시공, 유지관리에 이르기까지 과정이 길고, 복잡하다.
분쟁은 계약을 맺었는데, 계약대로 이행하지 않거나, 한쪽은 이행했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방은 이행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처럼 시각이 다를 때에 생긴다. 분쟁을 해결하려면 대상물의 사실관계를 분명히 하고(사실 사안), 그 사실관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법률 사안)가 쟁점이다.
사실 사안은 주장하는 당사자가 입증해야 한다. 한쪽이 주장하더라도 객관성을 갖기 어려운 사안일 때, 상대방이 다투면 문제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이때 객관적으로 사실을 판단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사실관계는 기술자가 확인할 일이다.

2. 건설 기술 분쟁 종류와 전문가

건설은 기획, 기본설계, 실시설계, 공사, 유지관리, 철거 과정을 거친다. 건축이 종합예술이라고 불리는 만큼 건축생산과정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함께 얽혀있다.
① 건설분야 산업재산권 분쟁 : 특허권, 디자인권, 상표권을 둘러싼 분쟁으로, 가설비계 설비를 위한 삼각발 지지구 사건, 투수콘크리트 사건, 지지핀 사건 등이 널리 알려졌다. 산업재산권은 전문영역으로 변리사가 담당한다.
② 건축설계저작권 분쟁: 최근 들어 제법 빈번하게 일어나는 분쟁이다. 건축 공사에서 설계저작권이 문제가 될 때 설계도용인지, 도용일 때 공사금지청구를 받아들여질지같은 관심사가 많다. 저작권은 따로 전문 자격사가 없어 일반법 분야로 보고 변호사가 주로 처리하지만 건축설계분야는 건축사나 건축기술사가 다룰 수 있다고 본다.
③ 건설클레임 성격의 분쟁: 주로 계약조건의 이행책임에 관한 것으로, 설계변경 등 계약조건의 변경에 따른 계약금액의 조정이 주요 쟁점이다. 건설클레임은 입찰계약제도와 기술 문제가 맞물려 있기에 건축분야 기술자가 다루는 게 제격이다.  20여년 전에 건설클레임전문가로 나선 사람들이 중재사건을 다루다가 변호사법에 된서리를 맞은 뒤로 풀이 꺾였지만, 본질로 볼 때 건설기술자가 다뤄야 하는 분야다.
④ 건축물의 하자책임: 계약이행을 둘러싼 분쟁의 한 종류다. 건축물의 품질기준에 대한 다툼이기 때문에 건축분야 기술자에게 친한 분야다.
그 밖에서 건설신기술지정과 그 취소를 둘러싼 분쟁과 같은 행정분쟁,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둘러싼 분쟁들이 있다.

3. 기술 분쟁 유형들

① 건축물에 쌓인 이력을 밝히기
어느 날 날벼락 같은 서류를 받는다. 내 집이 다른 사람의 땅에 서 있으니 침해한 부분을 철거해 달라는 요구를 담고 있다. 집을 짓고 산 지 30여 년이 됐고, 여태 내가 남의 땅을 침범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상대방은 지금까지 토지 경계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었다. 상대방이 제시한 토지 경계 측량도에는 내 집 일부가 상대방 토지에 걸쳐 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하더라도 내 집이 남의 땅 위에 있어서는 곤란하다. 30년 동안 아무 문제 없이 살아왔는데 지금 와서 집을 헐라는 요구에 따라야 할까?
민법 제245조 ①항에는 “20년 동안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부동산을 점유하는 자는 등기함으로써 그 소유권을 취득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내 땅이라 생각하고 그 땅에 내 집을 짓고 20년 이상 살아왔으면 내 땅으로 할 수 있겠다. 문제는 20년 이상 점유했다는 것을 어떻게 밝힐 것인가의 문제다.
30년 전부터 집이 있었더라도 집을 그때 있었다는 흔적(증거)이 남아있기 어렵다. 내 집을 잘 아는 주변 사람이 증언해 주면 좋겠지만, 까마득한 옛날을 기억하기도 쉽지 않거니와, 상대방이 증언하는 사람(증인)의 진실성을 의심하면 재판부도 쉽사리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런 사건에 휘말리면 ‘집을 지은 지 30년이 흘렀으니 건축 재료를 조사하면 건축 시기를 밝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건축재료는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가지 변화한 흔적을 남긴다. 건축재료로 많이 쓰는 시멘트는 짙은 색에서 점차 낡은 색으로 바뀌고, 외부에 노출된 표면에는 빗물이 흘러 검은색으로 바뀌고, 시멘트 블록 담장을 담쟁이가 타고, 두겁석에는 풀이 자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표면 변화에서 건축 시기를 찾아내기는 어렵다. 시멘트를 사용한 콘크리트 제품은 이산화탄소에 노출되면 중성화 현상이 생긴다. 중성화 깊이를 측정하여 흐른 기간을 찾는 실험식이 제시되기도 한다. 그러나 입력하는 수치를 명확하게 알 수 없는 것이 많아서 시료에서 ‘건축한 뒤 몇 년’이 흘렀는지 답을 찾아내기 어렵다.
건축물은 갑자기 완성된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집을 지으려면 땅을 골라야 하고, 이때 축대를 쌓고, 낮은 곳은 메운다. 같이 세운 축대는 대개 같은 재료를 쓴다. 집은 기초를 앉히고 콘크리트나 철골재를 써서 짓는다. 외벽과 지붕, 내장 재료는 건축 당시 생산된 재료를 쓰기에 건축 시기를 밝힐 자료다. 집을 지은 뒤에는 찾아온 사람이랑 찍은 사진도 참고할 자료다. 살면서 필요한 곳을 개조하기도 한다. 개조할 때 쓴 재료는 처음 지을 때 쓴 재료와 다르다. 건축물에는 세월의 흐름이 기록돼 있다. 국립지리원이나 지방자치 단체는 일정 주기로 항공사진을 찍어 활용하고 보관한다. 항공사진에서 예측하지 못한 단서를 찾을 때도 있다.
건물은 지나온 세월을 알고 있다. 분쟁이 생기면 건물이 가진 정보를 찾아야 한다. 건축할 때부터 건물에 일어난 일을 기록으로 남기자. 이렇게 남긴 자료가 진실을 밝히는 데 크게 기여할지 모른다.
②건축물에 콘크리트가 빠질 수 없듯이
콘크리트는 사람이 개발한 건축재료에서 가장 많이 쓰는 재료다. 우리 생활에서 콘크리트 없는 환경은 생각하기 어렵다.
콘크리트는 굳을 때 부피가 줄어든다. 콘크리트로 포장한 길바닥을 보면 틈이 벌어진 현상(균열)을 볼 수 있다. 콘크리트는 원래 갈라지기 쉬운 재료다. 갈라진 틈새는 보기 흉하고, 갈라진 틈새로 물이 스며들어 실내로 들어오면 보기 흉하고 불편하다. 균열이 생기면 힘을 받기에도 문제가 있다. 콘크리트에서 균열은 생기지 않게 하는 게 아니라, 생기더라도 쓰는 데 지장 없게 다스려야 한다. 수축량을 흡수할 수 있게 끊어(제어줄눈이나 신축줄눈) 수축량을 골고루 분산시키면 눈에 띄지 않는다. 이를 잘못 처리하면 균열이 흉하게 나타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어떤 간격으로 끊어 줄 것인지는 구조물의 상태에 따라 다르다. 설계자는 설계한 구축물의 상황에 맞게 간격을 설정한다. 일부러 시공줄눈을 설치하지 않도록 설계할 수 있으므로 단순히 제어줄눈이 없다는 것으로서 공사 잘못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
콘크리트는 물이 통하지 않는 재료다. 콘크리트 자체가 방수체다. 콘크리트 속에 있는 공극을 채우는 재료를 섞어 완벽한 방수체로 쓰는 공법(구체방수)도 있다. 이때는 따로 방수공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
콘크리트는 제대로 양생하여 굳으면 참 단단하다. 4대강 사업을 무리하게 마무리하려고 겨울에 콘크리트를 치는 바람에 동해를 입은 모습을 보면 화가 난다. 아라뱃길 옆길을 걷는데 동해를 입은 모습이 낯부끄럽게 드러나 있다.
콘크리트는 건축재료의 마술사다. 한편 억지로 밀어붙이면 골치 덩어리다. 주변에서 만나는 콘크리트,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면 친근하게 다가올 것이다. 콘크리트랑 친해지면 답도 쉽게 찾는다. 콘크리트를 알면 다르게 보일 것이다.
③ 배관이 얼어 터지다
지난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집 난방 상태가 허술하거나, 바깥에서 수도를 끌어오는 집이라면 수도관과 수도꼭지, 또는 수도 계량기가 얼어붙지 않을까 걱정한다. 수도관이 얼어붙으면 당장 물을 쓸 수 없어 생활하는 데 불편이 크고, 수도관 얼어붙는 것을 넘어 수도관이 얼어 터지는 사태(동파)가 일어난다면 집안에 물난리가 난다.
건물에 설치된 수도배관이 얼면 부피가 늘어나고, 내부에서 배관벽을 미는 압력이 세지고, 배관의 약한 부분에서 갈라진다. 동파다. 날이 춥더라도 배관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동파는 생기지 않을 수 있다. 배관 속에 있는 물이 얼려면 외기가 품고 있는 한기가 배관 속에 있는 물로 전달되어야 한다. 배관이 외기에 노출돼 있으면 한기가 곧바로 물로 전달된다. 외부에 설치하는 배관에는 일정 두께로 단열재로 감싼다. 이런 관 속으로 한기가 전달되려면 단열재를 통과해야 한다. 단열재의 두께와 성능에 따라 전달 속도가 달라진다. 건물 구조체를 형성한 콘크리트나 벽체 속에 설치된 관이면 관 주변을 둘러싼 건축재료가 단열재로서 역할을 하므로 단열재를 설치한 것과 비슷한 효과가 난다. 그래서 방바닥이나 구조체 속에 묻힌 배관은 쉽게 얼지 않는다. 콘크리트 속에 묻힌 관이더라도 혹한기에 오랫동안 방치되면 한기가 관 속으로 전달된다.
지난 겨울 서울 최저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고, 낮 최고 온도도 거의 영하인 때가 이어졌다. 이런 상태가 지속하면 동파가 생기기 쉽다. 이럴 때 집을 비우면서 난방을 꺼두면, 실내라 하더라도 기온은 영도 가까이 떨어진다. 실외는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므로, 실내 기온과 실외 기온의 기울기에 따라 온도가 점차 내려가 관이 묻힌 곳도 영하가 된다. 이때 아무 조치 없이 내버려 두면 관 속에 있는 물이 얼어붙는다. 특히 낮 최고온도가 영하로 유지되면 위험하다. 최고 온도가 영상이라면 그동안에는 구조체가 지닌 한기가 일부라도 외기로 방출되므로 동파 위험이 줄어든다.
혹한이 계속될 때, 배관이 얼지 않게 하려면, 수도꼭지를 틀어 물이 흐르게 하면 물이 얼지 않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난방 보일러를 설치한 집은 장기간 외출할 때에는 보일러를 끄지 말고 외출 기능으로 맞춰두고 나가면 된다. 실내온도가 설정한 온도 아래로 내려가면 보일러가 스스로 가동되어 열을 공급하므로 동파 가능성은 거의 없다.
동파사고가 나면 윗집과 아랫집 사이에 다툼이 생긴다. 열과 물의 흐름은 일반 상식으로 풀기 어려운 것이 많다. 열전달 원리, 배관을 감싼 구조체의 종류와 두께, 배관을 감싼 단열재의 종류와 두께, 실내 온도와 외기 온도의 차이와 그 지속 시간에 영향을 받는다. 동파 사고가 생기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는 게 좋다. 목소리가 큰 사람이 아니고, 기술의 본질을 아는 사람이 이긴다.
④물이 맺힌 건지 물이 새는 건지
비가 오면 청하지도 않았는데 불쑥 나타나는 것, 물을 물고 온 손님 누수다. 집 안에 물새는 데가 있으면 참 불편하다. 물은 새는데, 어디서 들어왔는지 찾기 어려우니 고치기도 어렵다. 물 문제를 놓고 아래윗집 사이에 많이 다툰다.
오묘한 물길: 방수막이 상하면 물이 샌다. 방수한 한 곳에서 물이 새면 다행이지만 엉뚱한 곳에서 새면 어디를 손봐야 할지 찾기 어렵다.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찾으려면 물이 흐르는 경로를 거꾸로 추적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경로를 쫓아가면 찾을 수 없는 상황일 때가 더 많다. 누수 원인을 두고 아래윗집이 소송이 붙으면 자기에게 유리한 증거를 주장하는 바람에 감정도 상하고, 끝까지 가자는 사람이 많아 안타깝다.
낡은 집을 수리할 때 조심하더라도 기존 방수층에 충격을 주기 쉽고, 그 충격으로 방수막이 영향을 받아, 공사한 뒤에는 아랫집에 물이 새기도 한다. 이럴 때 "공사 때문에 물이 샌다.", "나랑 상관없는데 엉뚱하게 뒤집어씌우지 마라."로 목소리를 높인다. 실제 누수 원인도 문제지만, 이웃 사이에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문제를 키울 때도 많다. 물이 새는 상황에 처한 사람의 불편함과 어려움을 이해하여 적극 대응하면 소송으로 가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다.
결로와 누수: 결로(結露)는 물체 표면에 물방울이 맺히는 현상이다. 공기에는 온도에 따라 머금을 수 있는 습기의 한도량이 있다. 공기는 온도가 높을수록 습기를 많이 머금을 수 있다. 여름에 차가운 컵 표면에 물기가 맺히는 게 결로다. 물맺힘이 건축 구조물에 생기면 불편하다.
공동주택 베란다는 주거 공간이 아닌데 베란다를 거실로 확장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공간은 외벽에 단열재가 없어 결로가 생기기 쉽다. 또 바닥 방수를 하지만 방수 품질이 낮고 외벽은 방수가 안 된 경우가 많아 비가 샐 염려가 많다. 베란다를 거실로 확장해 쓸 때는 실내에 습기가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거실로 불법 개조한 공간에 결로가 생긴다고 불평할 일은 아니다.
배관 누수: 집안에는 여러 배관(급수관, 온수관, 하수관)이 있다. 배관 공사가 잘못되거나 시간이 많이 흘러 재료가 낡으면 관에 틈새가 생겨 물이 샐 수 있다. 이때 정말 새는가, 샌다면 어디에서 새는가를 찾아야 한다. 이때는 관에서 물 빼내고 압축공기를 채워 압력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본다. 압력계 바늘이 움직이면 배관에 문제가 있다. 샌다는 것이 확인된 뒤, 어디에서 새는지는 음향 탐지로 찾아, 그 부위만 보수할 수 있다.
물이 새는 원인은 참 다양하기 때문에 찾기 어렵다. 원인을 찾는 사람의 경험도 많이 작용한다. 내 집에 누수 현상이 보이면 누수가 생긴 시각, 누수량, 누수 모양, 바깥 날씨, 누수 지속 시간을 꼼꼼히 기록해 두자.

4. 글 맺기

분쟁 각 과정과 단계에는 여러 전문가 간여한다. 건설 분쟁을 해결하려면 기술과 법률을 같이 알아야 한다. 현실에서는 건설 분쟁을 법률만 아는 법률가가 주도해 풀어간다. 그러나 기술을 모르기 때문에 분쟁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 한다.
기술과 법 양쪽을 다 알아야 할 때, 누가 접근하기 쉬울까, 누가 접근해야 양쪽을 다 알 수 있을까? 법률가가 건설 기술을 이해할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같은 공학에서도 분야가 다르면(기계 전기 화학 생명공학) 다른 분야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럴진대 법률가가 기술을 배워 알기는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기술자가 법을 깨치면 어떨까? 이것은 노력해야겠지만 가능하다고 본다. 기술 분쟁은 기술자가 풀자. 기술자여, 건설분쟁 해결사로 활동 영역을 넓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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